"상한 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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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2:16–25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괜찮아요”

요즘 청년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다음으로 많이 하는 말. 바로 “괜찮아요”라는 말입니다.
"요즘 어때?" "괜찮아요."
"힘든 일은 없고?" "네, 괜찮아요."
"기도 제목 있어?" "아뇨, 딱히 없어요. 다 괜찮아요."
“정말 좋아졌어요.”
정말 괜찮습니까? [3초]
저는 상담을 하면서 마음이 아플때가 많아요. 청년들을 지켜볼때도 마음이 아플때가 많아요. 어떨 때는 좀 화가 나기도 합니다.
분명 안 괜찮거든요. 얼굴은 그늘져 있습니다. 삶은 헝클어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관계가 깨져 있습니다.
그런데 입으로는 "괜찮다"고 말합니다.
더 무서운 건 뭔지 아십니까? 청년들 스스로 정말 괜찮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렇게 아픈데요. 그렇게 상처가 많은데요. 어떻게 하루아침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저는 그런 상태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
'가짜 평안'
가장된 평안입니다. 포장된 평화입니다.

1. 아픔을 피하는 이유

많은 청년들이 병에 걸렸습니다. ‘심각해지지 못하는 병’입니다. 어려움 앞에서 신음하는 청년들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난번에 나누던 고민을 다시 만났을 때 아직 가지고 있는 이들을 보기 힘듭니다.
다들 쿨하게 떠나보냅니다. 산뜻한 얼굴로 저를 찾아옵니다.
도대체 다들 어디서 그 감정들을 다 풀고 오는 겁니까? 아닙니다. 푼 게 아닙니다. 덮은 겁니다. 가린 겁니다. 잘라내 버린 겁니다.
왜 우리는 상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려 할까요? 왜 아파하지 않으려 할까요?
두렵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해 보이면 도태될까 봐. "나 힘들어"라고 말하면, "쟤는 문제 있는 애야"라고 낙인찍힐까 봐. 내 감정을 직면하면, 겨우 붙잡고 있는 내 멘탈이 와르르 무너질까 봐.
그래서 우리는 도망칩니다. 자기 보호 본능입니다. "나는 상처받지 않을 거야.” “나는 쿨하게 넘어갔어" “안보이면 끝이야 다 해결됐어” 그렇게 스스로를 속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친구와 다퉜습니다. 관계가 깨졌습니다. 마음이 편한게 정상인가요? 불편해야 정상입니다.
배우자와 다퉜습니다. 관계가 상하고 깨졌습니다. 마음이 즐거운게 정상인가요? 불편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그냥 덮어둡니다. 그리고 다른 걸 찾습니다.
맛집을 찾아가서 맛있는 걸 먹습니다. 유튜브를 켜서 웃긴 영상을 봅니다. 여행을 떠납니다. 자기계발에 몰두합니다. 운동을 미친 듯이 합니다. 직장에 가서 일에 열중합니다. 돈을 더 많이 법니다. 나랑 말이 통하는, 나를 지지해 주는 다른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잠깐은 잊혀집니다.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착각합니다. "아, 해결됐다. 나 괜찮아."
하지만 여러분. 그건 해결된 게 아닙니다. 마취제를 맞은 겁니다. 다리가 부러졌는데, 진통제 먹는거에요. 그리고 "나 안 아파, 나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깨어진 관계를 놔두고 누리는 평안, 그것은 거짓입니다.

2. 더 위험한 도피

그런데, 방금 말한 세상적인 도피보다 더 문제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들, 사역자들, 모태신앙들이 여기에 해당할지 모릅니다.
어떤 청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제 문제는 이러 저러 한 것입니다." "제가 무슨 죄를 짓는지도 알고요, 회개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압니다. 어차피 제 힘으로 안 되는 거에요.” “주님이 은혜를 주셔야죠."
여기까지면, 그래도 소망이 있을텐데요. "결국엔 하나님이 선하게 인도하시겠죠. 회복하시겠죠"
말을 들어보면 완벽합니다. 판단도 아주 정확합니다. 신학적으로도 옳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모습에서도 고통을 느낍니다.
이런 사람은 마치 '유튜브 영화 요약본 - 결말포함'을 보는 사람 같습니다. 영상 10분짜리 리뷰 영상을 본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영화에 대해 다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줄거리 알죠. 범인 누군지 알죠. 결말도 알죠. 그런데 정작 영화는 안 봤습니다.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고, 가슴 졸이는 그 과정도 없었습니다. 그 영화가 주는 진짜 감동과 충격은 진짜로 경험하지 못한 겁니다.
신앙생활도 이렇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죄가 뭔지 압니다. 십자가도 압니다. 속죄와 성화도 잘 압니다.
그런데, 정작 죄 때문에 아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머물러서 가슴 치는 시간이 없습니다.
"어차피 용서해 주실 거잖아." “언제 회복될지 나도 모르겠어” 하면서 지금을 넘어갑니다. 결론을 아니까, 과정을 생략해 버린겁니다.
성령님께 이끌려 내 죄의 비참함을 보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하며 신음하는 자아가 없습니다. 죄와 싸우는 치열한 고민도 없습니다. 그냥 머리로 다 정리하고 끝냅니다.
그리고 이렇게 착각합니다. "나는 다 알고 있으니까”, “나는 믿음이 성숙해."
아닙니다. 그건 성숙한 게 아니라, 무감각한 겁니다.
이런 상태로는 영혼이 절대 변화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런 상태를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디모데후서 3:5) 모양은 그럴듯한데, 능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상한 심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3. 관계의 회복 없이 평안은 없다.

깨어진 관계를 방치하는 것. 다른 즐거움으로 도망치는 것. 이것은 단순히 회피가 아닙니다. 죄입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관계의 대상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관계가 깨졌다면 슬퍼해야 합니다. 그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밥이 넘어가지 않아야 정상입니다. 잠이 오지 않아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과의 관계는 박살이 났는데, 나는 넷플릭스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을 무시하는 겁니다. 그 관계를 내 인생에서 하찮게 여기는 겁니다.
둘째,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을 기억하십니까? 관계가 깨어졌으면, 예물 드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배가 중요하지 않아서 드리지 말라는 겁니까? 아닙니다.
형제와 화목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형제와의 관계를 깨뜨려 놓고, 나에게 와서 거룩한 척하지 마라." "나는 너에게 그 가짜 평안을 준 적이 없다." “너의 그 그럴듯한 허울뿐인 기도는 받지 않겠다.”
요한일서 말씀도 무섭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들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쟁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체와의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는 엉망인데. 수련회 가서 손들고 찬양하면 뭐가 나아집니까? 아닙니다.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참된 평안, '샬롬'은 없습니다. 샬롬은 감정적 평안이 아닙니다. 문제 없는 것이 아닙니다.
샬롬은 관계적으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4. “상한 심령”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의 한 인물을 봅시다.
다윗입니다.
다윗은 엄청난 죄를지었습니다. 충신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그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지적했을 때,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때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아, 실수했네요. 하나님 죄송해요." 하고 툭 털고 일어났습니까? 기분 전환하러 사냥 나갔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하 12:16 을 봅시다.
2 Samuel 12:16 NKRV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다윗은 금식했습니다.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습니다. 하루가 아니었습니다. 이레 동안, 7일 동안 그랬습니다.
신하들이 와서 말렸습니다. "왕이시여, 이러다 몸 상하십니다. 식사 좀 하세요." 다윗은 거절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아파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죄를 직면했습니다. 죄의 결과를 직면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 자신의 추악한 모습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을 온몸으로 받아냈습니다.
이것이 **'상한 심령'**입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상한 심령은 '우울증'에 걸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감정 과잉이 되어서 맨날 울고 다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 "난 안돼 난 원래 쓰레기니까" 자학하라는 게 아닙니다.
상한 심령은 '영적 정직함'입니다. "하나님, 제가 망가졌습니다." "하나님, 이 관계가 깨졌습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이 마음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라고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가짜 위로로 덮지 않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으로, 사람들의 칭찬이나, 노력으로 얻는 상급으로 내 상처를 덮지 않는거에요. 찢어진 상처를 그대로 들고 하나님 앞에 주저앉아 있는 것.
그것이 상한 심령입니다.
다윗은 그 시간을 견뎠습니다. 회개는 클릭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회복은 자판기처럼 버튼 누르면 뚝딱 나오는 게 아닙니다. 다윗처럼 '엎드려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5.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

아마 여러분 중에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전도사님, 너무 우울합니다.” “저는 힘이 없어요.” “저는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저는 지금도 괴로워서 못할 것 같아요."
맞습니다. 아픕니다. 내 죄를 보는 건 끔찍합니다. 깨어진 관계를 직면하는 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있는 거에요.
우리가 왜 상한 심령을 가질 수 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멸시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51편 17절.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세상은 약한 모습을 멸시합니다. "멘탈이 약하네", "찌질하네"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다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저 아파요. 저 망가졌어요"라고 고백하면요. 주님은 여러분을 절대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 네가 이제야 진짜 너의 모습으로 내 앞에 왔구나." "내가 그 마음을 기다렸다."
상한 심령은 자격 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내가 깨어져야, 주님이 나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내가 무너져야, 주님이 나를 다시 세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상함이 진짜 치유의 시작입니다.

“직면하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괜찮은 척"은 그만 하십시오. 가면을 벗으십시오. 세상이 주는 값싼 위로, 가짜 평안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마취시키지 마십시오.
해결되지 않은 관계가 있습니까? 마음에 찔림이 있는 죄가 있습니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까?
덮어두지 마십시오. 여행으로, 쇼핑으로, 바쁜 스케줄로 도망치지 마십시오.
아파하십시오. 슬퍼하십시오. 그리고 그 상한 마음을 그대로 들고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다윗처럼 머리를 땅에 대고 기다리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주님이 싸매 주실 때까지.
상한 마음은 회복을 향한 가장 강력한 영적 자세입니다. 오늘 이 밤, 하나님은 여러분의 화려한 고백이 아니라 여러분의 깨어진 마음, 상한 심령을 원하십니다.
우리 시간, 정직하게 기도합시다. "하나님, 저 괜찮지 않습니다." "하나님, 저 마음이 상했습니다." "주님만이 나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이 고백이 터져 나오는 이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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